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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케인은 공개적으로 갈팡질팡했지만 오바마는 은밀하게 일련의 세미나를 쉬지 않고 했다. 그는 당의 경제 두뇌들과 주야로 장시간 전화회의를 했다. 오바마가 기댄 사람들 다수는 클린턴 사단의 베테랑들이었다. 재무장관을 지낸 밥 루빈과 래리 서머스, 경제자문위원회 수석이었던 로라 타이슨이 그런 이들이었다. 오바마는 빌 클린턴 본인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빌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조언을 구했다. 빌은 위기에 대한 오바마의 이해와 대응 방법들에 (정말이지,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바마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와는 정기적으로, (부시 정부의 재무장관) 폴슨과는 매일, 가끔은 더 자주 의견을 교환했다. 행크 폴슨은 오바마의 적극적 참여에 깜짝 놀랐다. 한번은 오바마가 당일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이동하기에 앞서 활주로에 전용기를 30분씩이나 대기시켰다. 장시간 비행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폴슨과 남은 이야기를 마저 해야 했다. 오바마가 밤늦게 집에서 폴슨에게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규제개혁 법안의 복잡한 세부사항을 두 시간 동안 토론했다. 오바마가 엄청나게 다양한 내용을 제기했고, 제기한 의견 역시 합리적이고 성숙해서 폴슨은 깜짝 놀랐다. 언제라도 공개적으로 당신을 지지해드리겠습니다. 오바마가 폴슨에게 한 말이다. 나는 대통령이 될 겁니다. 그 자리에서 붕괴한 금융시스템을 물려받고 싶진 않아요.

매케인도 버냉키와 폴슨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효과와 효율성은 오바마에 미치지 못했다. 매케인은 버냉키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에서 위기의 원인을 홈 데포(Home Depot)의 최근 경영 부진에 비유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가 버냉키에게 물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버냉키는 깜짝 놀라며 그렇게 대꾸했다.

폴슨이 긴급하게 매케인과 전화 통화를 시도해도 답변을 받기까지는 하루씩 걸리기가 다반사였다. 그때조차 전화를 받는 사람은 매케인이 아니라 린지 그레이엄이었다. 한번은 매케인이 폴슨과 통화하다가 페일린을 동참시키겠다고 우겼다. 그렇게 해서 참여하게 된 페일린. 그녀는 포퓰리즘적이며 또 월스트리트에 반대하는 진부한 생각들을 청산유수로 읊어댔다. 골드만삭스 CEO 출신인 폴슨에게 페일린의 언변은 기묘하게 비상식적인 것, 완전히 요점을 빗나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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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하일먼·마크 핼퍼린, [게임 체인지], pp.554-555

limitist:

조엘 스폴스키는 그의 저서 ‘조엘 온 소프트웨어’에서 무려 세 개의 장에 걸쳐 기능명세서 작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어떻게하면 명세서를 잘 쓸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위 인용한 문단은 ‘좋은 명세서 작성의 조건’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명세서를 ‘혼자’ 쓰라는 것이다.

난 여기에 크게 공감하며, ‘심플하고 매끄러운 UX’의 비결이 혹시 ‘최대한 적은 사람이 설계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래와 같은 생각.

  • 1명이 서비스 전체의 UX를 설계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 아무리 많아도 3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3명도 별로 좋진 않다)
  • 피드백은 낱장의 와이어프레임이 아닌, 주요 Flow를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공유한 후 받는다.
  • 단, 피드백을 받을 때 중요한 것 : ‘피드백’을 받야아 한다는 것이다. 결코 ‘컨펌’을 받아선 안된다. 최종 의사결정은 설계자가 내려야 한다.

위와 같이 생각한 이유는…

  1. 여러 사람이 함께 서비스를 설계하면 결국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서로의 생각을 완전 일치시킬 순 없다.
  2. 여러 사람이 함께 서비스를 설계하거나 누군가의 ‘컨펌’을 받는다면, 서비스에 대한 ‘소유의식’이 떨어진다. (위 인용문에 나온 것 처럼) ‘소유의식’이 떨어지면 ‘애착’이 떨어지고, 자신의 설계를 방어하는데 게을러진다. 그냥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고, 지적받는대로 고치게 되며, 그러는 동안 남아있던 소유의식마저 사라지고 경험은 ‘덕지덕지 주렁주렁’ 상태가 된다.
  3. 전체 서비스가 돌아가는 모습과 그것이 줄 ‘느낌’, ‘경험’을 상상해낼 수 없다. 내가 설계한 건 ‘느낄 수’ 있지만, 솔직히 남이 설계한 건 그냥 ‘문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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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그리하여 IMF 관계자들 (당시 나는 IMF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고 있었다)은 세계 무역 불균형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다섯 당사자-미국, 유로존,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를 한자리에 소집해 어떻게 하면 이런 불균형을 줄일 수 있을지 협의하기로 결정했다. 이 계획의 IMF 공동 책임자로 선정된 나는 공식적인 회의가 열리기 전에 미리 결정해두어야 할 합의 사항을 도출하기 위해 2006년 여름 팀원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국제회의 전문가들은 잘 알겠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국제 모임 자체는 그저 형식일 뿐 실제 중요한 내용은 그 모임을 개최하기 전에 모두 합의해놓는 것이 상례다.

(중략) 어느 나라를 찾아가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모두 다른 나라가 주범이라고 손가락질했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이들 나라가 세계 무역 불균형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나라도 먼저 나서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해 크게 실망한 나는 2006년 말 IMF를 떠나 시카고 대학으로 돌아갔다. 그동안에도 IMF는 국가 간 협의를 계속했고, 그 협의는 2007년에 마무리되었다. 당시 IMF는 그 협의가 대성공이었으며 기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발표했는데, 각국 관료가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기탄없이 의견을 밝힌 것은 맞다. 또한 각국이 원래 시도하려 했던 대책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는데, 실제로 원래 시도하려 했던 대책은 거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세계적인 금융 대위기가 발발했다. 분명한 것은 무역 불균형을 초래한 각국의 정책과 행동이 이번 금융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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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구람 라잔, 폴트 라인, pp.417-419

""금융 개혁 추진에 필요한 보편적 원칙" □ 경쟁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 인센티브 및 가격 왜곡 문제를 개혁해야 한다: 정부 개입에 대한 기대를 불식시켜야 한다.
□ 금융 기관에 대한 정부 보조금과 특권 부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 경기 순환 사이클에 부합하는 규제 감독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

— 라구람 라잔, 폴트 라인, pp.321-327

"미국의 격화되는 소득 불평등 원인은 교육 불평등에 있다.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유권자의 불만이 커지자 정치권이 선택한 방법은 주택 금융 확대였다. 이러한 정치적 압력은 금융 산업의 대출 분야가 크게 왜곡되는 현상을 가져왔고, 결국 심각한 단층선, 즉 폴트 라인을 형성했다. 가계 대출 확대를 통한 주택 보유율 증대는 소득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인식을 가장 쉽고 빠르게 심어줄 수 있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 라구람 라잔, 폴트 라인, pp.93-94

"공군력을 세계연방 차원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이 무슨 소용인가? 문제는 결국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다. 세계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하는 건 무슨 소용인가? 중요한 건 5대 군사대국 중 어느 하나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각 있는 사람들 모두 웰스(H. G. Wells) 씨가 하는 말에 기본적으로 공감해왔다. 그러나 지각 있는 사람들은 아무 힘도 없으며, 기질적으로 스스로를 희생시킬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 조지 오웰,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나는 왜 쓰는가],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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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주문을 한 지 한참이 지나도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작가이기도 한 내 친구가 물었다.

"죄송하지만, 민스 커틀릿 주문을 받은 종업원 아가씨는 혹시 그만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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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네하라 마리, 유머의 공식,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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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 「밤은 고요하리라」

원문의 특성인지 불어의 특성인지 역자의 특성인지 관념적인 문장이 너무 많아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아마 대부분은 로맹 가리의 삶의 팬이기도 할) 로맹 가리의 팬이라면 읽어볼만한 책. 근간으로 나온다는 「개리 쿠퍼여 안녕」과 「징기스 콘의 춤」을 매우 기대 중. 마음산책 화이팅.

pp.156~158
프랑수아 봉디 :
한 가지는 우리가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하네. 조금 전에 나는 양심의 문제로 보이는 것을 제기했지. 자네는 자네가 미국이나 국제 여론 앞에서 프랑스 대외 정책을 ‘변호’하는 게 아니며 그걸 ‘설명’할 뿐이라고 내게 말했지. 내가 보기엔 도피성 대답인 것 같은데. 그 능란함이 설득력 있다기보다는 교묘해 보이네. 1951~1953년에 유엔 프랑스 사절 대변인이었을 때 자네는 프랑스군이 인도차이나에서 벌이는 전쟁과, 튀니지와 모로코 그리고 아프리카 식민지 전체의 독립 허용에 대한 절대적 거부를 ‘설명’해야만 했잖나. 당시에 알제리는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그곳은 그저 온전히 ‘프랑스 땅’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시절 자네는 『하늘의 뿌리』를 쓰고 있었지. 이 책의 명백한 두 주제 중 하나가 ―자연환경 보호와 더불어― 아프리카의 자유에 대한 호소였잖나. 그래서 이런 질문을 자네에게 하는 거네. 수백만 미국인 앞에서, 세계 언론을 대표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 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자네가 말을 할 때마다, 게다가 거의 매일이었잖나, 자네는 자네 개인 생각과 반대로, 즉 자네 양심과 반대로 행동하지 않았나?

로맹 가리 :
자네에겐 요구할 권리가 있으니 내가 자세하게 대답해 주겠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문제가 제기되지. 내 양심은 프랑스 국민의 양심이 아니네. 프랑스 국민은 민주적으로 의회를 선출했고, 의회는 엄격한 공화주의의 적법성 안에서 정부를 신임했지. 이 정부에는 외무부 장관이 속했고, 외무부 장관은 뉴욕에 오곤 했네. (중략) 프랑스 국민의 이 정책을 나는 최선을 다해 ‘변호’했네. 이 표현을 받아들이겠네. 왜냐하면 내 일은 변호사의 일, 랑드뤼(10여 명의 여성을 유인해 살해한 희대의 연쇄살인범)를 변호한 모로 지아페리의 일이었고, 또는 라발(제2차 세계대전 중 독립에 협력한 비시정부에서 부총리와 법무장관을 지내 전후 전범으로 처형된 정치인)을 변호한 노의 일이었으니까. 나는 이 변호사의 일을 내가 가진 기술적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 충실하게 수행했네.

프랑수아 봉디 :
그 충실성은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로맹 가리 :
민주주의의 끝까지지.


pp.162~163
프랑수아 봉디 :
유엔이 자네에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로맹 가리 :
거기엔 뛰어난 국제공무원 집단이 있지. 그 상징적 인물이 사무국장(사무총장을 말하는 듯)인 다그 함마르셸드인데 콩고에서 사망했지. 정치적 내용을 보면 인간의 위대한 꿈에 대한 항시적인 위반이지. 유엔은 민족주의 암에 잠식당했네. 민족주의는 특히 젊고 신선하고 상큼할 때 무엇보다 다른 민족들의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한 민족을 가차 없이 처분하는 권리이지. 민족자결권의 이름으로 여자들의 클리토리스나 손을 자르고, 불륜을 저지른 여자들에게 돌을 던지고, 총살하고 몰살하고 고문할 권리라네. 자네 나라의 국경 안에서 자네가 100만 명의 사람을 죽게 하고도 유엔에, 인권위원회에 자리를 차지하고, 유엔총회 때 연단에 올라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 관한 연설을 하고 박수갈채를 받을 수 있단 말이네. 왜냐하면 한 국가의 내정은 성스러운 것이니까. ‘유엔’이라는 이 말은 그 자체로 언어에 던지는 도전이고 언어에 대한 유용이고 강간이지. 유엔은 집행부가, 다시 말해 안전보장이사회가 어떤 시체라도, 어떤 몰살이라도, 어떤 노예제도라도 파묻을 수 있는 곳이네. 프랑스, 소련, 미국, 영국, 중국 등의 강대국 중 하나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말이네. 그럼에도 강대국의 어느 외무부 장관이 이런저런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든 가입국의 참여를 촉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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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 백선희 역, 「밤은 고요하리라」, 마음산책

미 대사관 앞 세종대왕상. “한국과 미국, 세계속으로 함께 갑니다.” 오바마는 “함꿰- 갑쉬다-“고 그랬지.

미 대사관 앞 세종대왕상. “한국과 미국, 세계속으로 함께 갑니다.” 오바마는 “함꿰- 갑쉬다-“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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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보이지? 그 여자가 여기 와 있어. 당신한테 꽃을 가져왔어. 당신이 바라던 그대로야. 그 여자와 함께 노력해 당신을 흡족하게 해줄게. 좀 어려운 일이긴 해. 추락, 공허, 어색함을 느낄 테고, 호흡이 긴 작품에서처럼 영감이 간절한 순간들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곁에서 오래 살았잖아. 그럴 경우 언제나 두 사람을 위한 구덩이가 마련되는 것 같아. 내가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당신은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저 여자에게 많은 자리를 할애한 거야. 저 여자에게 당신에 대한 말을 다시는 하지 않을게. 당신한테 약속한 것처럼. 당신은 저 여자가 당신 때문에 번거로워지는 걸 바라지 않았잖아. 당신은 저 여자에게 당신의 취향, 당신의 습관을 강요하길 원치 않았어. 당신은 저 여자가 참고해야 할 정보 같은 것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어. 당신이 좋아했던 물건과 사진을 모조리 숨길게. 추억을 곱씹으며 살지 않을게. 지금 내게 남은 당신의 일부를 사랑하는 데에는 숲, 들판, 바다, 대륙, 세계를 보는 것으로 충분해. 그 무엇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 아주 멀리 날아갔어. 당신 기억나? 발데모사에서 본 두 개의 올리브나무가 어찌나 친친 얽혀 있던지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할 수 없었잖아. 그런 우리를 도끼질로 갈라놨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아파. 특히 두 팔과 가슴이. 사람들이 거기 있던 당신을 낚아채 갔지. 눈에서, 입술에서, 온몸에서 당신의 부재가 깊이 느껴져. 사라지지 않는 이 깊은 흔적은 여자를 위한 성소가 된 것 같아. 여자를 맞이하고 축복하고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준비된 곳 말이야. 그녀가 와 있어. 그녀가 당신을 보고 있어.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기 위해 당신을 보고 있는 거야. 그녀는 불안해하고 있어. 시간이 필요해. 우리는 아직 서로 좀 낯설고 머뭇거리고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어. 우리에겐 말다툼과 갈등이 필요해. 서로의 악습과 결점과 비루함을 알 필요가 있어. 그 모든 불일치가 우리로 하여금 상대 안에 자신의 모습을 더 잘 새기게 해줄 거야. 우리 관계를 수선해주고, 서로 맞춰가게 해주고, 점차 서로에게 적응하게 해줄 거야. 이윽고 애정이 샘솟아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게 되겠지.”


리디아: “난 지금 루아시 공항에 있어. 몇 달 동안 떠나 있을 거야. … 난 밤새도록 당신의 간곡한 호소를 들었어. 그런데 채워야 할 자리가 너무 커. 내게는 벅차. 당신은 내가 왜소해질 여지를 주지 않아. 사랑하기 위해서는 경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당신은 대성당의 건축가인데, 나는 침실 두 개짜리 80제곱미터의 공간에서 살고 있는 여자일 뿐이야. 당신은 삶 전체였던 아내를 잃고는 당신 삶을 갖고 여자 하나를 만들려 애쓰고 있어. 당신의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을 두고 떠났어. 당신이 사랑의 풍요로운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난 훨씬 안심했을 거야. 당신에겐 내게 줄 게 더는 없었을 테니까.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나도 알아. 다만 사랑 없이 살기가 불가능하다는 그 사실 역시 하나의 삶의 방식이야. 난 내가 뭘 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 나는 극도로 불행한 나머지 누군가를 도울 필요가 있었던 거야. 나는 당신들 둘 다를 도우려 애썼어. 이게 몹시 이기적이라는 거 나도 알아. 당신은 동료애를 언급했지.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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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맹 가리, 김남주 역, 「여자의 빛」, 마음산책, pp.141-142 / pp.154-155